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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및 탐방/지방

경북 영천 정몽주의 임고서원 정보 및 여행기

 

외가댁이 경북 영천인 관계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영천 쪽에는 뭐가 유명할까 인터넷을 뒤지던 중에 정몽주의 임고서원이 있다고하여 마침 정도전 드마라도 재밋게 본것도 있고 해서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경북 영천에 위치한 임고서원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임고서원의 위치

 

 

임고서원은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향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임고에 있는 서원이라고 하여 임고서원이라고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시도 기념물 62호로 지정되어 있고 1985년 10월 15일에 지정되었습니다. 4가지 테마로 구분되어 있는데 유적 건조물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으로 되어있습니다.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으나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대략 한 20대정도 주차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임고서원의 정몽주

 

임고서원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입니다. 정몽주는 공민왕시절 과거에 급제하였고 정승자리까지 오른 문신입니다. 특히나 왜구 토벌에 공을 많이 세웠으며 명나라와의 긴장상태에 왜교술을 발휘하는등의 능력자 였습니다.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의 시조라 불리며 시와 글 그림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였습니다. 특히 시조 단심가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그의 충절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나라에 충절을 바치고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이방원이 살해하였습니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년 임고면에 세워졌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후에 선조 36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으나 1965년에 복원되었습니다.

 

 

 

 

 

이 건물이 정몽주의 일대기와 임고서원의 정보가 있는 포은 유물관 입니다. 너무 잘해놓다보니 새건물처럼 보였습니다.

 

 

 

포은 유물관의 운영은 10시부터 17시 까지 월요일은 휴일입니다. 문의와 위치등은 위에 정보를 참고 하세요.포은유물관에 들어서자 잘 만들어 놓은 정몽주의 초상화와 빛을 비춰 한문이 각인되는듯한 느낌의 정몽주의 글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입체적으로 잘 만들어 놨더군요.

 

 

 

임고서원의 조형도 입니다. 호수를 끼고있는 언덕의 옆이 포은유물관 입니다. 아래쪽에 다리는 선죽교를 모형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설명이 보기쉽게 잘 되어있었고 우리애는 6살이라서 잘 모르지만 흥미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이상 국사를 배우는 아이들을 데려온다면 도움이 될것 같았습니다. 담당자 선생님? 이 여행객들에게 열심히 설명해주는 광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눌러서 반으하는것 이라면 뭐든 다 눌러보는 우리 아이..

 

유물관은 반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임고서원에 대한 정보와 오른편에는 포은관으로 정몽주의 일대기를 모아놓은곳이 있었습니다.

 

 

과거시험 대책문 입니다. 당시 고려는 빈번하게 국경을 넘어오던 홍건적에 대처하는 것이 현실적 당면 과제였습니다. 이제 과거 시험관이 홍건적의 대처방안을 과거시험 문제로 제시하였습니다.(1360년 과거시험 대책문)

 

 

오죄상소문입니다. 구려후기에 포은선생이 오죄와 관련되어 유배되었던 사람들의 사면,복권을 위해 올린 상소문입니다. 상소문 내용은 "상벌은 나라의 큰 법입니다. 한사람을 상주면 천만 사람을 권장하게 되고 한사람을 벌주면 천만 사람을 두렵게 되는 것입니다.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분명한 것이 아니라면 중도를 얻어서 한 나라의 인심을 복종시킬 수 없습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 홍만종은 웅위하고 장건하여 마치 큰 도끼로 하늘을 갈고 촉산으로 가는 길을 여는듯하다 라고 하여 포은 선생의 호방한 기상을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또한 포은 선생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남긴 시 "ㅎ오무정사봉사일본작기삼"을 고려의 오언시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았습니다. 후세에 미칠 정도로 정몽주의 필력이 대단하다는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몽주의 초상으로 역사인물 초상화 전문 작가인 권오창 화백이 2003년 중모한 정몽주 초상입니다. 임고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3본의 포은선생 초상 중 보물 1110호인 1629년 어진화사 김식이 그린 숭정기사모본을 저본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2003년에 약간 각색되어 멋드러지고 고풍스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포은이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예감하고 말을 꺼꾸로 타고 선죽교를 건너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 이럴때 CPL렌즈필터를 끼고 갔어야 하는데 말이죠. 다 비취네..

 

 

 

포은유물관 입구 입니다. 여기 오른편에 보면 영화관처럼 약 50여명정도 앉아서 정몽주에 대해서 애니매이션으로 제작한 영화를 상영중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만화를 재밋게 보며 정몽주에 대해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가서 사진을 찍으면 요런 호기심이 있는 아이들에 표정을 사진으로 담으실 수 있습니다.

 

 

임고서원의 정몽주 유물관 입구의 모습입니다. 바로 앞에는 탁트여 광장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포은 선생이 낚시를 즐겼다 하여 조옹대라 부르고 낚은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용이라고 하여 조룡대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연못은 용연이라 불렀는데 이번에 복원을 하고 울진 금강송 아래 자라던 토종 잉어를 분양받았다고 합니다. 금강이라 이름지은 뜻은 포은 선생의 시 호중관어의 모든것이 팔팔한 고기와 같네 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숙종대왕(1661~1720)작 전문은 "절의가 천추에 높으니 평생에 내가 존중하도다. 열조께서 여러 번 포숭하였거니와 사람의 누구인들 노피지 않으리오."  입니다.

 

 

오른쪽이 영조대왕의 글입니다. 전문은 "도덕과 정충이 만고에 뻗치니 태산같은 고절의 포은공일세" 왼편은 고종황제의 글입니다. " 높은 충성 큰 절의가 우주에 빛나니 동방의 오도는 공에게 힘입었네" 이글을 보고 후세에 왕들이 이런글귀를 남기니 정말 사람은 이름을 남겨 후세에 고루 모범이 된다는것 깨닳게 되었습니다.

 

 

동방이학지조 송탑비 입니다. 전면 글씨는 퇴계 선새의 유묵 중에 집자 하였으며 후면에서 조선시대 어제어필시를 각자 하였다고 합니다.

 

 

정몽주가 살해된 선죽교의 모습을 재연한 선죽교의 모형. 빨리 통일이 되어 개성에 진짜 선죽교를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고서원의 500년된 나무. 사진에 각이 안나와서 여행하신다면 요 각도를 추천드립니다. 앞에 주인공의 허리띠 정도에서 자륵 나무 전체가 나오게 된다면 더 멋진 사진을 찍으실 수 있습니다. 비용드는것도 하나도 없고 정말 교육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경북 영천을 지나실때 혹여나 경주에 가실때는 길목에 임고서원을 꼭한번 다녀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