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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려시대

고려시대 요동정벌 실패(위화도회군)가 역사에 끼친 영향은?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면서 요동정벌은 실패한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고자하는 명분과 이성계세력의 제거라는 현실적 목표의 2개 과제를 동시에 수행했던 요동정벌은 이렇게 실패로 끝을 맺으면서 고려사회 전반에 충격적인 변화의 소용돌이를 불러습니다. 이 요동정벌의 실패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봅니다.


도 세력의 교체


요동정벌의 실패 첫번째는 주도 세력의 교체로 이어집니다. 이성계를 우두머리로 하는 위화도회군파는 빠르게 고려의 중앙정부를 장악하였습니다. 최영의 방어군을 격파하였고 고려의 임금은 이색의 건의에 의해서 창이 추대되었습니다. 그후에 신돈의 수혼이라 하여 허수아비 임금을 세워 정권을 장악했고 눈에 가시인 정적들을 제거하고 조선을 건국했었죠.



려의 멸망


요동정벌은 고려의 멸망을 가져왔습니다. 몽골의 지배 시기부터 세력을 형성한 권문세가의 몰락을 가져왔고 주자학을 통한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였던 사대부들은 타락하고 무기력한 불교를 배격하고 새로운 정치이념으로 주자학을 대체하였습니다. 이로써 불교사원과 권문세가의 권력은 고려의 멸망과 함께 끝이 났습니다.



국사 영역을 압록강 이남으로 국한


요동정벌의 실패는 한국사의 역사 영역을 압록강 이남으로 국한시키는 결과를 초래해버렸습니다. 위화도 회군은 고려의 북진정책을 부정한 것이었고 고조선,부여로 이어지는 북방영토의 포기를 의미한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고조선-부여의 역사영토는 요동지역에서 압록강 이남으로 옮겨졌는데 이것은 위화도회군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한 조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알아서 엎드리는 시대가 도래한거죠.



방사와 대륙역사의 부정


고조선부터 부여,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북방역사와 대륙역사의 정통성과 자주성이 부정되었습니다. 이성계는 사대부라는 명분을 내걸고 명나라의 천하에 종속되는 국제질서를 추구하였는데 대외적인 자주 항쟁의식은 약화되고 국제정세에 어두운 변방의 역사로 전락하였습니다.


위화도 회군을 하지않고 이성계가 요동을 정벌했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나라 지도가 틀려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도 주변 열강과 얽히고 섥히며 전쟁만 더 할수도 있었거니 생각도 듭니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정치이익을 위해서 이런 행동들을 보인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정치는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씁슬합니다.(참고서적 : 단숨에 읽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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