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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조선시대

이방원과 정도전 신권중심제와 왕권중심제의 대립

 

조선의 개국은 정도전과 이방원의 작품으로 생각해도 무방할정도로 이들의 공은 크다. 하지만 국가의 통치제도를 국왕중심이냐 신하중심이냐를 놓고 정도전과 이방원이 대립하면서 조선 초기를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들어주었다.

 

이부분은 드라마인 정도전에서도 잘 표현해주었는데 정도전은 조선개국의 설계사 였는데 정도전은 성리학의 기본이념에 따라 가장 이상적인 통치방식을 재상제도에 두었다. 제상제도는 국가의 정책을 개발하고 집행하는 국정운영에 재상이 중심이 되는 신권정치로 국왕은 훌륭한 재상을 판별하고 임용하고 재상으 도움을 받아 결재하는 역할로 의원내각제도의 대통령과 비슷한 정치제도였다.

 

 

 

이방원은 정도전의 신권정치에 반기를 들고 임금이 중심이 되는 왕권정치를 주장하며 정도전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 하였다. 이런 가운데 정도전은 이성계를 움직여 신권정치를 실현시키고자 11세에 불과한 신덕왕후 가이의아들인 8남 의안대군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나아가 종친세력과 개국공신들의 무력기반인 사병을 혁파하며 정부군에 편입시키려고 하였다. 이른바 신권정치에 반대되는 세력의 무장해제였다.

 

 

출처 : jdjmania.wordpress.com

 

마침 명나라가 조선에 대해 지나치게 내정에 간섭하고 과도한 공물을 요구하자 정도전은 사병을 혁파하는 수단으로 요동정벌을 주장하여 종친과 공신들의 사병을 정부군에 편입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정도전 세력과 이방원 세력이 첨에하게 대결하는 구도가 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