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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조선시대

타고난 승부사 이방원과 왕자의 난

 

신권중심론의 정도전(왼편)과 왕권중심론의 이방원(오른쪽)

 

정도전과 이방원은 정몽주의 반대의 편에서 싸웠지만 후에는 왕권중심론과 신권중신론에 대립이 생기면서 정치적인 대결을 하게된다. 왕권중심론과 신권중심론의 대결에서 선제공격은 정도전이 하였지만 곧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데 최고의 공을 세운 이방원은 정도전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도전의 사병혁파

 

정도전은 사병혁파를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각각의 사병역할을 하는 시위패를 국가에 종속시켜 국가의 무관들로부터 명령을 받게 하는 공병으로 전환시키는 조치이다. 정도전의 사병혁파에 반대하는 조영무,장사길,이성계의 2남 방과,4남 방간을 끌어들이고 하륜,이숙번과 처남인 민무구,민무질과 함께 반격에 나섰다.

 

출처 : ichannela.com

 

1차 왕자의 난

 

이방원의 반란을 제1차 왕자의 난이라 부른다. 1398년 7월에 정도전,심효생,남은 등을 제거하고 곧바로 궁궐에 진입하여 태조 이성계의 병간호를 하던 7남 방번과 8남인 세자 방석을 처형하고 동북누이 경순공주의 남편인 이제도 죽였으며 이미 세상을 떠난 방석의 어머니인 선덕왕후 강씨를 폐서인시켰다.이방원은 제1차 왕자의 난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형인 방과를 임금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세제가 되었는데 이성계의 4째아들인 방간은 정종을 뒤이어 자신이 임금이 되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다.

 

 

 

2차 왕자의 난

 

권력을 장악한 이방원과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방간은 자신의 사병과 함께 이방원의 참모였다가 떨어져 나온 박포 등과 1400년 1월에 이방원을 제거하려는 반란을 일으켰다. 역사에서는 이를 제2차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력기반이 약했던 방간의 반란은 훈련과 무장이 우월한 이방원,이지란,조영무의 반격에 곧바로 무너져 실패하였다. 이방원은 방간의 난을 물리친 후 정종의 뒤를이어 조선의 3대 임금으로 즉위한다.(참고 : 단숨에 읽는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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